전세 보증금을 지키는 힘은 계약서 본문이 아니라 특약란의 세 문장, 곧 보증보험 가입 조건, 잔금일 권리 변동 금지, 수리 책임에서 나온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의 효력은 다음 날 0시에 생겨 잔금일 하루의 빈틈이 발생하는데, 이 틈을 막는 특약 한 줄이 경매에서 변제 순위를 가른다. 서명 전 등기부등본과 공시가격 126% 기준을 직접 확인하고, 특약 위반 시 계약 해지와 계약금 반환 조항까지 넣었는지 점검해야 한다.
전세 보증금을 지키는 장치는 계약서에 인쇄된 본문이 아니라 맨 아래 특약란에 손으로 적는 몇 문장에 있다. 집을 처음 구하는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놓치는 지점도 여기다. 순서만 외워 두면 된다. 보증금 반환을 보장하는 문장, 잔금일의 권리 변동을 막는 문장, 수리 책임을 가르는 문장. 이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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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것이다. 이를 막는 1차 방어선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다. 그런데 이 보증은 아무 집이나 들어주지 않는다. HUG는 주택가격을 공시가격의 140%로 잡고 거기에 전세가율 90%를 적용한다. 결국 전세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를 넘으면 가입이 막힌다. 국토교통부는 2024년 6월 이 '126% 룰'을 유지하되, 집주인이 이의를 제기하면 감정평가액으로 집값을 다시 매길 수 있는 예외를 뒀다.
문제는 계약할 때는 가입이 될 것 같아도 막상 신청에서 거절되는 경우다. 그래서 특약에 "임차인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못하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임대인은 받은 계약금을 즉시 반환한다"는 문장을 넣는다. 서울시도 같은 취지의 특약을 권장한다. 가입 가능 여부는 안심전세앱이나 HUG 홈페이지에서 계약 전에 미리 확인할 수 있다.
보증보험과 별개로, 법이 주는 보호 장치도 챙겨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집을 넘겨받아 살면서 전입신고를 하면 대항력이, 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으면 우선변제권이 생긴다. 우선변제권이 있어야 경매에서 후순위 채권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가져온다. 다만 이 효력은 신고한 다음 날 0시에 생긴다. 바로 이 하루가 두 번째 문장의 이유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다음 날 0시'에 생긴다는 점은 전세 계약의 가장 큰 함정이다. 잔금을 치르고 전입신고를 한 그날 낮, 임대인이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근저당을 설정하면 어떻게 될까. 임차인의 권리는 다음 날 0시에야 생기므로, 당일 낮에 설정된 근저당이 앞선 순위가 된다. 경매가 벌어지면 은행이 먼저 돈을 가져가고 보증금은 뒤로 밀린다.
그래서 넣는 문장이 "임대인은 잔금일 다음 날까지 저당권 등 어떠한 권리도 새로 설정하지 않으며, 위반하면 계약은 해지되고 임대인은 손해를 배상한다"는 특약이다. 실제로 이 약속을 어긴 사례가 있다. 한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입신고 전에 채권최고액 5,000만 원짜리 근저당을 설정했고, 법원은 계약 해지를 인정해 전세금 2억 5,000만 원 반환과 함께 위약금 1,250만 원을 물렸다. 계약서에 위약금 약정은 없었지만 "별도 약정이 없으면 계약금을 손해배상의 기준으로 본다"는 조항이 그 근거가 됐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선순위 대출이 이미 있는 집이라면 특약만으로는 부족하다. "잔금으로 갚겠다"는 임대인의 말에는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잔금 지급과 대출 상환, 근저당 말소 접수가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법무사의 말소 접수증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 돈을 넘겨야 한다.
보증금만큼 자주 다투는 게 수리 책임이다. 민법은 임대인에게 세입자가 집을 제대로 쓰도록 유지할 의무를 지운다. 보일러 고장, 누수, 노후 배관처럼 주거의 기본에 해당하는 큰 수선은 임대인 몫으로 본다. 반면 전구 교체 같은 소모품성 수선은 통상 임차인이 부담한다.
문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 입주 뒤 분쟁으로 번진다는 데 있다. 특약에 "보일러, 수도, 누수 등 주요 시설의 하자 수리는 임대인이 부담한다"처럼 큰 항목을 못 박아 두면 다툼이 줄어든다. 입주 전 집 상태를 사진으로 남기고, 원상복구 범위에서 '자연적인 노후'는 제외한다는 문장을 더하면 퇴거할 때 보증금에서 수리비가 빠져나가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특약을 다 적었다면 서명하기 전에 다음을 확인한다.
특약은 많이 쓴다고 좋은 게 아니다. 보증금을 지키는 문장, 하루의 빈틈을 막는 문장, 수리 책임을 가르는 문장. 이 세 축을 정확히 적는 것이 첫 전세 계약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