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수리비와 퇴거 시 원상복구 책임은 민법이 큰 틀만 정하고 구체적 경계는 당사자의 특약으로 정해진다. 임대인의 수선의무와 통상의 손모 개념을 모르면 집주인 요구에 끌려가 보증금에서 복구비를 공제당할 수 있다. 입주 전 하자를 사진과 특약으로 남기고 수리비 부담을 금액으로 적어 두면 분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전세로 들어가 살다 보면 보일러가 고장 나고, 나갈 땐 벽에 난 못 자국을 두고 집주인과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이런 다툼은 대부분 누가 고치고 누가 비용을 내느냐가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아서 생긴다. 민법은 수선 책임과 원상복구 의무의 큰 틀만 정해 두고, 구체적인 선은 당사자가 특약으로 그으라고 비워 놓았다. 그래서 계약서의 특약 몇 줄이 2년 치 분쟁 여부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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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할 일은 입주 전 집 상태를 남기는 것이다. 이미 있던 하자를 내가 만든 것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집을 둘러보며 벽지 얼룩, 바닥 긁힘, 창틀 곰팡이, 수도와 보일러 작동 여부를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날짜가 남게 저장한다. 그리고 발견한 하자를 특약란에 목록으로 적는다. '거실 벽 하단 곰팡이, 작은방 창틀 파손 상태로 인수'처럼 구체적으로 써 두면 퇴거할 때 그 부분은 책임에서 빠진다.
사는 동안 생기는 고장의 비용 부담이 두 번째 쟁점이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에게 집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할 수선의무를 지운다. 누수, 노후 배관, 보일러 고장, 구조적 균열처럼 거주 자체를 방해하는 하자는 원칙적으로 임대인 몫이다.
다만 판례는 임차인이 적은 비용으로 쉽게 고칠 수 있고 사용에 큰 지장이 없는 사소한 흠은 임대인이 책임지지 않는다고 본다. 이 사소함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특약에서 숫자로 끊어 두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수리비 10만 원 이하는 임차인, 초과분은 임대인 부담'처럼 금액 상한을 적으면 전구나 수도꼭지 같은 소모성 수리와 보일러 교체 같은 큰 수리의 경계가 분명해진다. 또 하자를 발견하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알려야 한다(민법 제634조). 통지 없이 방치하다 커진 손해는 임차인이 떠안을 수 있다.
마지막 쟁점은 나갈 때의 원상복구다. 핵심은 통상의 손모는 복구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이 살면 자연히 생기는 벽지 변색, 장판 눌림 자국, 바닥 마모, 못 하나 크기의 흔적 등은 임차인이 되돌릴 의무가 없다. 반대로 임차인이 일부러 부쉈거나 임대인 동의 없이 바꾼 부분은 복구해야 한다.
대법원도 원상복구 범위는 계약 경위와 입주 당시 상태, 임차인이 바꾼 내용을 따져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본다. 임차인이 손댄 범위 안에서 입주 당시 상태로 돌리면 되고, 이전 세입자가 설치한 것까지 복구할 의무는 없다. 그래서 특약에 '통상의 손모는 임차인의 원상복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한 줄을 넣어 두면 도움이 된다. 다만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모든 손상을 임차인이 복구한다는 식으로 적힌 특약은 강행규정에 어긋나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
집주인이 알아서 깨끗이 쓰면 된다고 말해도 그 말은 서면에 없으면 효력이 없다. 특약은 의심이 아니라 서로의 책임을 미리 그어 두는 장치다.